글귀

성기완, 당신의 텍스트 中

buttxr 2017. 2. 28. 22:11

웬일이죠

오히려 당신이 생각날 때

당신에게 연락을 안 한다는

당신은 그렇게 먼

그러나 때로는 가까운

 

당신의 나신이 기억나지 않아요

우리는 어두운 곳에서 벗었죠

불이 켜져 있을 때는

눈을 감았죠

그렇게 우리는 척척한 몰입의 순간에도

비밀을 유지했다는

 

이건 뭐죠

나는 몇 번이나 참았어요

사랑한다는 말을

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오기 직전에

이를테면 사정의 순간 직전에

나는 다른 말을 내뱉었죠

안에다 싸도 되냐는 식의

 

대답은 늘 하나였어요

안 된다는 것

나는 늘 그 대답에 안도했죠

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

무거워지지 않을 거라는 거

 

도대체 왜일까요

당신에게 연락을 안 하기로 마음먹을 때

자꾸 당신에 관한 나의 비밀은

검은 흙 위에 돋아나는 봉숭아 새싹처럼

마음의 텃밭에서 연두색으로 자라나요

 

싹을 똑 똑 꺾어요

수신된 문자를 지우듯

그러나 자꾸 묻지만

 

웬일이죠

당신의 문을 똑 똑

두드리며 비를 맞는

내 그림자를 박 박

지우고 싶지 않은 것은

 

그래요

그대로 있겠죠

당신도

나도

절대로 사랑하지 않으리라는

굳은 결심 속에서

오늘도 혀를 감아요