글귀

이병률, 절연

buttxr 2017. 2. 28. 22:32

어딘가를 향하는 내 눈을 믿지 마오
흘기는 눈이더라도 마음 아파 마오
나는 앞을 보지 못하므로 뒤를 볼 수도 없으니
당신도 전생엔 그러하였으므로
내 눈은 폭포만 보나니


믿고 의지하는 것이 소리이긴 하나
손끝으로 글자를 알기는 하나
점이어서 비참하다는 것


묶지 않은 채로 꿰맨 것이 마음이려니
잘못 얼어 밉게 녹는 것이 마음이리니


눈 감아도 보이고 눈을 감지 않아도 보이는 것은
한 번 보았기 때문
심장에 담았기 때문


눈에 서리가 내려도 시리지 않으며
송곳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 것은
볼 걸 다 보아 눈을 어디다 묻었다는 것


지독히 전생을 사랑한 이들이
다음 생에 앞을 못 본다 믿으니
그렇게라도 눈을 씌어야 다음 생은 괜찮아진다 믿나니


많이 오해함으로써 아름다우니

딱하다 안타깝다 마오


한 식경쯤 눈을 뜨고 봐야 삶은 난해하고 그저 진할 뿐
그저 나는 나대로 살 터 당신은 당신대로 살기를
내 눈이 허락하는 반경 내에서 연(緣)은 단지 그뿐

[출처] 이병률, 절연|작성자 9one