글귀

오은, 스크랩북

buttxr 2017. 3. 2. 23:41

오전에는 패션지에 실린 너를 오린다 너는 앉아 있지만 나는 모가지에서 너를 싹둑 자른다 스모키 화장을 

한 네 얼굴이 마음에 든다 얼굴 없는 네가 의자에 앉아 사방을 두리번거린다


오후에는 신문에 나온 너를 오린다 너는 서 있지만 나는 눈 딱 감고 네 허리를  쳐내버린다

너의 상체는 내가 탐할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네 반쪽이 방금 3면에서 사라졌다


네 가슴을 구하기 위해 나는 성형외과에 간다 성형외과에는 빵빵한 가슴들이 많다 나는 포스터를 훑고 맘에 든

가슴 한 쌍을 오린다 조만간 너는 더 완벽하게 태어날 것이다


집에 와서 너의 부위들을 잇대기 시작한다 조각난 하루도 이어 붙인다 패션지에 실린 너의 얼굴과 신문에 나온 

네 하체 사이에 너의 새 가슴을 이식한다 너는 전보다 더 자신만만해졌다


수술을 마친 너를 분쇄기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른다 너의 육체가 국수 면발처럼 뽑혀 나온다 나는 너를 파괴하고 

창조하고 다시 파괴할 권리가 있다 스모키 화장을 한 네 눈에 방금 잿빛 눈물이 맺혔다


조각난 너를 가지고 폭죽을 만들겠다 너는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가 나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 떨어질 것이다 

두 팔을 활짝 벌려 너를 안아주겠다 열리지 않는 책이 되어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겠다 신인가수가 깜짝 데뷔해 

내 취향을 바꾸어놓을 내일모레까지는

[출처] 오은, 스크랩북|작성자 구르미