글귀

이응준, 애인

buttxr 2017. 5. 5. 22:54

그날 밤 다리 밑에서

그녀와

다리 밑에서 나는

낙타 같은 그녀와


낙타의 발자국 같은 그녀와

사막 위의 마을 같은 그녀와

전신주가 내려다보던 그녀와


천둥과 눈물과 통조림

태풍과 신문 배달부와

밟고 지나가서는 안 되는 것들과


어제 죽은 아버지의 바지와

나무 의자와 신호등과 야구장

뚜껑 없는 맨홀

무너지는 가슴과 손거울과

춘화 곁의 소년

초승달과 이별과 내


바다 위 다리 위를 뛰어가는

그녀의 흰 운동화와

이상한 일들과 부러진 크레파스와

목을 매면 키가 커질 것 같은 예감과

고양이가 증오하는 쓰레기통과

이름밖에 모르는 어떤 여자애 입술과

결국 그녀와 모든 것들이 그녀와

그날 밤 다리 밑에서

그녀와

그녀 다리 밑에서 나는

낙타처럼 그녀와