글귀

유병록, 빨강

buttxr 2017. 5. 15. 01:59

아무래도 나는 빨강이 되어 가는 중이다


빨강을 만난 건 겨울이었거나 겨울이 아니었더라도, 그는 흰 눈 위에 떨어진 핏방울 혹은 얼음 속의 불


우리 잠시 스쳤을 뿐인데


묻었나 봐

꼭 여며 두었던 소매 끝이거나 긴 목도리의 한쪽에

열꽃이 번지고


나는

사흘에 한 번 빨강을 앓고 하루에 한 번 그를 앓으며 빨강이 되어 간다


빨강은 얼어붙은 불이었거나 불타는 얼음


이미 

날은 어두워졌는데 얼음에는 관용의 기미가 없는데


몇 켤레의 빨강 발자국이 지나간다 구름 위 어느 따뜻한 나라에서 실수로 떨어뜨린 사과처럼 몇 개의 붉은 지붕이 빛난다


빨강은 죽어 간다는 증거

그러나 아직은 살아 있다는 증거


色에 빠지면 흑백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는데


나는 붉어진다

홍조를 띤 것처럼 빨강이 되어 간다 불타오를수록

추운